공식 물가는 잡혔다는데 왜 체감 인플레는 심한가

“정부 발표를 보면 물가 상승률이 2%대로 안정세라는데, 도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요? 시장만 가면 모든 게 두 배로 뛴 것 같아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목소리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공식 소비자물가지수(CPI)는 분명 안정권에 접어들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 속 물가는 그야말로 고공행진 중입니다. 월급은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데 장바구니 비용, 점심값, 커피값은 왜 이렇게 무섭게 오르는 걸까요?

과연 정부의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느낌’ 속에 숨겨진 또 다른 경제적, 심리적 비밀이 있는 걸까요? 많은 분이 느끼는 이 답답한 괴리감의 원인을 구체적인 데이터와 사례를 통해 속 시원하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1. ‘평균의 함정’: 공식 물가지수는 어떻게 계산될까?

가장 먼저, 공식 물가 지표인 소비자물가지수(CPI, Consumer Price Index)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정부는 전국 도시 가구가 주로 소비하는 약 458개의 대표적인 상품과 서비스로 구성된 ‘장바구니’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 품목들의 가격 변동을 조사한 뒤, 각 품목이 전체 가계 소비에서 차지하는 중요도인 ‘가중치’를 곱해 평균을 냅니다.

문제는 바로 이 ‘평균’‘가중치’라는 개념 속에 숨어있습니다.

이는 마치 학교 성적을 계산할 때 국영수 같은 주요 과목에 더 높은 가중치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소비자물가지수 역시 우리가 돈을 많이 쓰는 항목일수록 전체 지수에 더 큰 영향을 미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주요 품목별 가중치 예시 (전체=1000)]

구분 주요 품목 가중치 (대략) 특징
가중치 높은 품목 전·월세, 휴대전화 요금, 자동차, 휘발유 90~130 구매 빈도는 낮지만 지출액이 큼
가중치 낮은 품목 배추, 라면, 두부, 사과, 콩나물 1~5 구매 빈도는 높지만 1회 지출액이 작음

표에서 볼 수 있듯, 우리가 매일 또는 매주 사는 농축수산물이나 가공식품의 가중치는 개별적으로 매우 낮습니다. 반면, 한 번 지출할 때 목돈이 들어가는 전·월세나 자동차, 통신비 등은 훨씬 높은 가중치를 차지합니다.

이것이 바로 ‘평균의 함정’입니다. 예를 들어, 10년에 한 번 바꾸는 TV나 자동차 가격이 기술 발전으로 안정세를 보이거나 하락하면, 매일 사는 배추나 사과 가격이 두 배로 폭등해도 전체 물가 상승률은 크게 오르지 않는 ‘착시 현상’이 발생합니다. 통계상의 숫자는 안정적일지 몰라도, 우리의 일상적인 고통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이죠.

2. 가격표는 그대로인데… 교묘한 ‘보이지 않는 가격 인상’

“가격은 그대로라는데, 왜 양이 줄어든 것 같지?” 이런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이는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교묘한 전략으로, 이 역시 체감 물가를 끌어올리는 주범입니다.

  • 슈링크플레이션 (Shrinkflation): ‘줄어들다(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입니다.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제품의 용량을 줄이는 방식입니다. 과자 봉지 속 질소의 양이 늘어난 것 같거나, 아이스크림 크기가 눈에 띄게 작아지고, 키친타월의 두께가 얇아지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가격표는 변하지 않았으니 공식 물가 지수에는 즉각 반영되기 어렵지만, 소비자는 실질적으로 더 비싼 값을 치르는 셈입니다.

  • 스킴플레이션 (Skimpflation): ‘인색하게 굴다(Skimp)’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입니다. 가격과 용량은 그대로 두면서 원재료를 더 저렴한 것으로 바꾸거나 서비스의 질을 낮추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냉동 피자의 치즈 토핑이 줄어들거나, 식당 반찬 가짓수가 줄고, 호텔의 무료 서비스가 유료로 바뀌는 현상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 역시 소비자가 느끼는 만족도는 크게 떨어지지만, 가격표에는 변화가 없어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 물가 상승입니다.

이러한 ‘꼼수 인상’은 공식 CPI가 측정하기 어려운 회색지대에 존재하며, 통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더욱 벌리는 역할을 합니다.

3. 우리는 숫자가 아닌 ‘경험’으로 기억합니다: 강력한 심리적 요인

경제는 결국 사람의 심리입니다. 통계가 아무리 객관적인 숫자를 제시해도, 우리가 물가를 인식하는 방식은 매우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 구매 빈도의 효과: 사람은 어쩌다 한 번 사는 품목의 가격보다 자주 사는 품목의 가격 변화에 훨씬 민감합니다. 매일 아침 사 마시는 커피값이 500원 오르는 것은 5년에 한 번 바꾸는 냉장고 가격이 20만 원 내린 것보다 훨씬 더 아프고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매일 장을 보고, 점심을 사 먹고, 주유를 하는 품목들의 가격이 오르면, 다른 수십 가지 품목의 가격이 안정적이더라도 “모든 물가가 다 올랐다”고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 손실 회피 심리: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사람은 같은 금액이라도 이익에서 얻는 기쁨보다 손실에서 느끼는 고통을 약 2배 이상 크게 느낀다고 합니다. 가격 인하는 ‘당연한 것’이나 ‘작은 기쁨’으로 여기지만, 가격 인상은 ‘손실’이자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훨씬 더 오래, 그리고 강렬하게 기억합니다. 마트에서 계란 한 판 가격이 500원 내렸을 때보다, 500원 올랐을 때의 충격이 훨씬 더 큰 이유입니다.

  • 나만의 개인 물가 지수: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사람의 소비 패턴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발표하는 CPI는 대한민국 ‘평균’ 가구의 이야기일 뿐, 결코 당신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은 유류비 비중이 높아 유가 변동에 민감합니다.
    •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분유, 기저귀, 학원비 상승을 누구보다 크게 체감합니다.
    • 외식을 자주 하는 1인 가구는 외식비와 배달비 인상에 가장 큰 타격을 받습니다.

이처럼 각자의 생활 방식에 따라 자신만의 ‘개인 물가 상승률’이 존재하며, 이것이 공식 통계와 다를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결론: 내 느낌이 틀린 게 아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공식 물가는 안정적인데 왜 나만 힘들지?’라는 생각은 여러분의 착각이나 과장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복합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1. 통계의 한계: CPI는 전체의 ‘평균’을 보여줄 뿐, 우리가 자주 구매하는 품목의 가격 급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평균의 함정’이 있습니다.
  2. 기업의 전략: 가격표 뒤에 숨은 ‘슈링크플레이션’‘스킴플레이션’이 우리의 실질적인 지출을 늘리고 있습니다.
  3. 인지적 편향: 우리는 자주 사는 품목의 가격 인상을 더 크게 느끼고, 손실을 더 아프게 기억하는 심리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4. 개인의 차이: 모든 사람의 소비 패턴이 다르기에, ‘나만의 체감 물가’는 공식 통계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정부 발표와 내가 느끼는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괴리가 왜 발생하는지 그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앞으로 더 현명하게 소비하고 가계 경제를 꾸려나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지갑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며,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까지 고려하는 지혜로운 소비자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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