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회복되고 있다”, “수출이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는 희망적인 뉴스가 연일 들려옵니다. 실제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전선에서는 맑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죠. 하지만 이상합니다. 내 월급 통장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장바구니 물가는 왜 이렇게 무섭게 오르는 걸까요? 뉴스 속 경제와 내가 체감하는 경제 사이에 너무나 큰 온도 차가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이러한 불안감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6개월 앞서 알려주는 ‘경제 예보’와도 같은 경기선행지수가 13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서며 강력한 경고등을 켰기 때문입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이 ‘경기선행지수’가 무엇인지, 왜 13개월 만에 하락했는지, 그리고 이 신호가 우리의 하반기 살림살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쉽고 깊이 있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상반기에는 부진했지만 하반기에는 나아질 것’이라는 ‘상저하고(上低下高)’의 희망이 ‘상반기에도, 하반기에도 부진할 것’이라는 ‘상저하저(上低下低)‘의 공포로 바뀌고 있는 이유, 지금부터 함께 알아보시죠.
1. 13개월 만에 울린 경고음, 경기선행지수란?
먼저 ‘경기선행지수’라는 조금은 낯선 용어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이 지표는 말 그대로 앞으로의 경기가 좋을지 나쁠지를 미리 보여주는 ‘경제의 신호등’ 또는 ‘경제 일기예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고, 건설 수주, 주가, 경제 심리 등 미래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7가지 지표를 종합해 만드는데요, 이 지수가 오른다는 것은 6개월 뒤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파란불’, 내린다는 것은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는 ‘빨간불’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신호등에 13개월 만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00.3으로, 전월보다 0.2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무려 12개월 동안 이어지던 상승세가 드디어 꺾인 것입니다. 이는 마치 힘겹게 산을 오르던 중, 본격적인 오르막길에 들어서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과 같은 위험 신호입니다. 경기 회복의 동력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전에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죠.
2. 무엇이 경제의 발목을 잡았나? (선행지수 하락의 4가지 원인)
그렇다면 무엇이 12개월간의 상승 랠리에 제동을 걸었을까요? 특정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경제 곳곳에 자리 잡은 복합적인 문제들이 동시에 터져 나왔습니다.
하락 요인 | 세부 내용 |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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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쌓여가는 재고 (재고순환지표 -2.3%p) |
반도체 출하가 늘었음에도 재고는 훨씬 더 많이 쌓임. (2022년 8월 이후 최대 하락 폭) |
기업들이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도 소비나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창고에 먼지만 쌓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생산과 소비의 연결고리가 삐걱거리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
2. 얼어붙은 건설 현장 (건설수주액 -4.0%p) |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신규 공사 수주가 급감함. | 당장 눈에 보이는 것보다 미래가 더 암울합니다. 지금 수주가 없다는 것은 앞으로 지어질 건물이 없고, 건설 관련 일자리도 줄어든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
3. 불안한 마음 (경제심리지수 -0.4%p) |
기업과 소비자 모두 미래 경기를 비관적으로 전망함. | 경제는 심리입니다.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면 사람들은 지갑을 닫고, 기업은 투자를 망설이게 되어 실제 경기 위축으로 이어집니다. |
4. 차가워진 주식시장 (코스피 -1.8%p) |
국내 주식시장이 하락세로 전환됨. | 자본시장은 경제의 미래 가치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합니다. 투자자들 역시 향후 경기를 낙관적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
이처럼 생산, 건설, 심리, 금융 시장 전반에 걸쳐 경고음이 동시에 울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3. 수출은 ‘맑음’, 내수는 ‘폭우’ – 심화되는 불균형 경제
이번 경기선행지수 하락은 우리 경제가 처한 구조적인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바로 ‘불균형적 회복’입니다.
한쪽에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이 역대급 실적을 내며 한국 경제를 힘겹게 끌고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고금리와 고물가에 짓눌린 내수(소비와 투자)가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내수 시장으로 흘러들어 우리 모두의 소득과 소비를 늘리는 ‘낙수효과’가 실종된 것입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4월 산업활동 지표에서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 생산(-1.4%), 소비(-1.2%), 투자(-0.2%)가 모두 감소하는 ‘트리플 감소’ 현상이 15개월 만에 나타났습니다. 이는 기업의 생산 활동, 가계의 소비, 기업의 미래 투자가 동시에 멈춰 섰다는 의미로, 내수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보여줍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수출·제조업 중심의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으나, 내수·건설 등 민생과 밀접한 부문의 회복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디다”고 인정하며, 이로 인해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 개선 정도가 미흡하다고 평가했습니다.
4. “하반기는 상반기보다 더 힘들 것” – 상저하저(上低下低)의 공포
이러한 지표들을 근거로 전문가들은 하반기 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는 ‘상저하고(上低下高)’, 즉 상반기에는 경기가 다소 부진하더라도 하반기에는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기대가 ‘상저하저(上低下低)’, 즉 상반기에도 부진하고 하반기에는 더 부진할 것이라는 공포로 바뀌고 있습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현재 수출은 반도체가 이끌고 있는데 하반기에도 계속 좋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며 “내수는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앞으로도 계속 안 좋을 것이다. 하반기 경제가 상반기보다 훨씬 안 좋을 것 같다“고 예측했습니다.
즉, 유일한 희망이었던 수출마저 꺾일 경우, 꽁꽁 얼어붙은 내수와 함께 우리 경제가 더 깊은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결론: 단순한 숫자 너머의 경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13개월 만에 하락한 경기선행지수는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닙니다. 이는 수출이라는 하나의 엔진만으로는 더 이상 거대한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고 갈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는 강력한 경고 신호입니다.
고금리와 고물가라는 거대한 장벽에 갇힌 내수 부진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수출 호조는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단기적인 지표 개선에 연연하기보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물가 안정과 내수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또한 우리 개인들도 막연한 낙관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경제적 어려움에 대비해 현명하게 자산을 관리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 경제가 ‘수출’과 ‘내수’라는 두 개의 엔진을 모두 힘차게 가동하여 이 위기를 극복하고,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진짜 ‘경제의 봄’을 맞이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