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치킨부터 7천원 피자까지… 가격 인하 경쟁, 디플레이션의 서막일까?
요즘 장바구니 물가, 정말 무섭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치솟는 물가에 지갑 열기가 두려운 요즘, 반갑게도 우리 눈에 띄는 현상이 있습니다. 바로 대형마트의 6천 원대 치킨, 1천 원대 커피, 심지어 7천 원짜리 브랜드 피자까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유통업계 전반에 불어닥친 ‘초저가 가격 인하 경쟁’입니다.
고물가 시대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소식이지만,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과연 이 같은 가격 인하 경쟁은 단순히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기업들의 착한 마케팅일까요? 아니면 우리 경제에 드리워진 ‘디플레이션’이라는 어두운 그림자의 전조일까요? 오늘은 이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질문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 보겠습니다.
1. 전방위로 확산되는 ‘가격 파괴’ 현장
최근의 가격 인하 경쟁은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생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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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의 생존 전략, 초저가 PB 상품
지난 몇 년간 유통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초저가 치킨’이었습니다. 홈플러스가 ‘당당치킨’으로 포문을 열자, 이마트 등 다른 대형마트들도 앞다투어 저렴한 델리 상품을 출시하며 맞불을 놓았습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이제는 치킨을 넘어 피자, 탕수육, 샐러드 등 다양한 품목에서 가격 파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마트가 ‘가격 역주행’을 선언하며 자체 브랜드(PB) 상품 40여 종의 가격을 동결하거나 인하하는 등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
커피부터 피자까지, 외식업계의 출혈 경쟁
외식업계의 가격 경쟁은 더욱 치열합니다. ‘메가커피’, ‘컴포즈커피’ 등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의 성장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입니다. 최근에는 피자헛이 방문 포장 시 7천 원대 가격의 메뉴를 선보이며 피자 업계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고물가를 핑계로 너도나도 가격을 올리던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흐름입니다. -
한국 시장을 뒤흔드는 ‘C-커머스’의 공습
이러한 가격 경쟁에 기름을 부은 것은 바로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계 이커머스 플랫폼, 이른바 ‘C-커머스’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과 막대한 물량 공세로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기존 유통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습니다. ‘천원숍’ 다이소의 온라인 진출 역시 이러한 초저가 경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분야 | 주요 사례 | 특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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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 홈플러스 ‘당당치킨’, 이마트 ‘가격 역주행’ 선언 | PB 상품 중심의 초저가 전략, 고객 집객 효과 |
외식업 |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 피자헛 7천원 피자 | 박리다매 전략, 브랜드 이미지보다 가성비 중시 |
이커머스 | 알리익스프레스, 테무의 국내 시장 공략 |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 국내 유통 생태계 위협 |
2. 고물가 시대의 역설, 왜 가격을 내릴까?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이토록 극단적인 가격 인하 경쟁에 뛰어드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첫째, 얼어붙은 소비 심리 때문입니다. 오랜 기간 이어진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해 소비자들의 실질 소득은 줄어들었고, 이는 소비 여력 감소로 직결되었습니다. 이제 소비자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을 넘어,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생존형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렇게 닫힌 지갑을 열게 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가격 인하’인 셈입니다.
둘째,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한 출혈 경쟁입니다. 특히 C-커머스의 등장은 국내 유통업체들에게 거대한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면 순식간에 고객을 뺏기고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합니다. 당장의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더라도 고객을 묶어두고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그야말로 ‘치킨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비용 절감을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입니다. 기업들은 유통 구조를 단순화하거나,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PB 상품 개발에 집중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원가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확보한 가격 경쟁력을 소비자에게 어필하며 불황을 극복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3. 반가운 할인인가, 디플레이션의 경고인가?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장의 가격 인하가 반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디플레이션(Deflation)’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디플레이션이란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으로, 인플레이션보다 더 무서운 경제의 복병으로 불립니다.
왜 디플레이션이 위험할까요?
디플레이션은 ‘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만듭니다.
가격 하락 → 기업 수익 감소 → 투자 및 고용 축소 / 임금 삭감 → 가계 소득 감소 → 소비 위축 → 수요 부족으로 인한 추가 가격 하락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한번 형성되면 경제 전체가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소비자들은 ‘나중에 사면 더 싸지겠지’라는 기대 심리로 소비를 미루게 되고, 이는 기업의 재고 증가와 실적 악화로 이어집니다. 결국 일자리가 줄어들고 경제 성장이 멈추는, 이른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같은 장기 불황을 겪을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가격 인하 경쟁을 디플레이션의 시작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현재 상황이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단계일 뿐,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여전히 플러스(+)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부 품목에서 시작된 가격 인하 경쟁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이것이 총수요 부진의 신호탄이라면 경계심을 늦출 수 없습니다. 특히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된 한국 경제의 현실을 고려할 때, 수요 부진으로 인한 저물가 현상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4. 현명한 소비, 그리고 미래를 위한 통찰
그렇다면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단기적으로는 소비자로서 가격 인하의 혜택을 누리는 ‘현명한 소비’를 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같은 제품과 서비스를 더 저렴하게 이용하며 가계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 현상이 우리 경제에 보내는 신호를 읽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가 즐겨 찾던 동네 가게가 문을 닫고, 주변에서 일자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진다면, 지금의 ‘초저가 경쟁’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기업의 건전한 이윤과 노동자의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되어야 건강한 소비도 지속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가격 인하 경쟁은 우리 경제가 중대한 기로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시그널입니다. 고물가의 터널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안정된 경제일지, 아니면 디플레이션이라는 또 다른 암초일지, 앞으로의 변화를 그 어느 때보다 유심히 지켜봐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