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 부산은 영화의 바다에 흠뻑 빠져듭니다. 세계적인 영화인들과 수많은 관객의 발길이 향하는 곳, 바로 부산국제영화제(BIFF) 때문이죠. 하지만 혹시 이런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부산국제영화제의 진짜 무대는 과연 영화관뿐일까?”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오늘날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은 단순히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을 넘어, 영화라는 콘텐츠를 매개로 부산이라는 도시 전체를 여행하고, 즐기고, 경험하게 만드는 개방형 마케팅 전략에 있습니다. 마치 잘 짜인 영화처럼, 영화제는 영화, 여행, 그리고 우리 동네 상권을 절묘하게 엮어내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단순한 영화 축제를 넘어 도시 브랜딩의 성공 신화가 된 부산국제영화제의 마케팅 전략을 세 가지 핵심 열쇠로 나누어 깊이 있게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어떻게 영화가 골목 상권을 살리고, 관객을 도시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렸는지, 그 흥미로운 여정을 지금 바로 함께 떠나보시죠.
1. 영화관 밖으로 나온 영화: 부산 전체를 여행지로 만들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왔는데, 영화만 보고 가기엔 너무 아쉽잖아요?”
부산국제영화제 마케팅의 첫 번째 성공 열쇠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 데 있습니다. 영화 관람이라는 단일 목적을 넘어, ‘영화 때문에 부산에 와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내며 도시 전체를 거대한 테마파크로 탈바꿈시킨 것입니다. 이른바 ‘스크린 투어리즘(Screen Tourism)’의 가장 성공적인 구현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K-콘텐츠 팬심 저격, ‘스크린 투어리즘’의 완성
최근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를 직접 방문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제28회 영화제 기간, 부산시 및 부산관광공사와 손잡고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관광+한류’ 결합 상품을 선보인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 상품은 단순히 영화제 티켓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화 촬영지 투어, 관객과의 대화(GV) 참여, 영화 전문가 특강(마스터클래스) 등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제공했습니다. 즉, 영화제 관람이 자연스럽게 부산의 명소를 둘러보는 관광으로, 또 깊이 있는 영화 경험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외국인 팬들에게는 “BIFF에 가면 영화뿐만 아니라 부산의 모든 매력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가 영화관으로? ‘동네방네비프’의 마법
부산국제영화제의 무대가 꼭 화려한 영화관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동네방네비프’ 프로그램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깨뜨립니다. 해운대나 남포동이라는 특정 공간을 넘어, 부산 시민과 관광객이 즐겨 찾는 해변, 시장, 공원 등 일상적인 공간으로 직접 찾아가 영화를 상영하는 것입니다.
-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백사장에서 즐기는 영화
- 왁자지껄한 시장 한가운데서 만나는 뜻밖의 영화 한 편
- 저녁노을 지는 공원에서 돗자리를 펴고 감상하는 영화
상상만 해도 낭만적이지 않나요? ‘동네방네비프’는 관광객에게는 부산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추억을, 지역민에게는 내 삶의 터전에서 축제를 즐기는 주인의식을 선물합니다. 이처럼 도시 곳곳에 영화적 경험을 심어둠으로써, 영화제는 부산이라는 도시 전체의 매력도를 자연스럽게 끌어올립니다.
2. 남포동의 부활, 지역 상권과 상생하는 축제의 힘
부산국제영화제의 심장을 꼽으라면 단연 영화제의 발상지인 남포동과 중구 원도심일 것입니다. 한때 영화제의 중심이었지만 해운대로 주 무대가 옮겨가며 아쉬움을 남겼던 이곳에, BIFF는 ‘커뮤니티비프(Community BIFF)’라는 혁신적인 프로그램으로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사장님, 여기서 영화 봐도 돼요?” – 동네상영관의 탄생
2018년 시작된 커뮤니티비프의 백미는 바로 ‘동네상영관’ 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관객이 직접 프로그래머가 되어 보고 싶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을 넘어, 2023년부터는 남포동 일대의 작은 가게들과 손을 잡고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동네상영관 | 업종 | 특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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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 (I’s) | 이자카야 | 맛있는 음식과 술을 곁들이며 영화를 즐기는 공간 |
블루문 | LP바 | 좋은 음악과 함께 영화의 감성에 젖어 드는 공간 |
홈 (Home) | 비건카페 | 건강한 음료와 함께 편안하게 영화를 감상하는 공간 |
나이브 (Naive) | 칵테일바 | 특별한 칵테일 한 잔과 영화가 어우러지는 공간 |
이 4곳의 개성 넘치는 가게들은 영화제 기간 동안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상영관으로 변신했습니다. 관객들은 단순히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보는 것을 넘어, 그 가게만이 가진 분위기와 이야기, 그리고 맛과 향까지 오감으로 영화를 체험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협업을 넘어선 ‘상생’입니다.
상점들은 영화제 기간 동안 독특한 문화 공간으로 입소문을 타며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수 있었고, 영화제는 대기업 스폰서십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 소상공인과 함께 축제를 만들어가는 건강한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지역 상권이 축제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체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가장 혁신적인 사례입니다.
BIFF 광장의 씨앗호떡, 축제가 만든 경제 효과
남포동 BIFF 광장의 상징과도 같은 씨앗호떡. 축제 기간 이곳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영화제를 찾은 국내외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호떡을 맛보는 모습은 BIFF가 지역 상권에 미치는 직접적인 경제 효과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한 상인에 따르면, 영화제 기간에는 평소보다 2배가 넘는 수익을 올린다고 하니, 축제가 뿌리는 활력의 씨앗이 얼마나 큰 결실을 맺는지 알 수 있습니다.
3. “관객이 주인공”, 팬덤을 만들고 스스로 퍼져나가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수많은 영화제 속에서 특별한 이유는 관객을 단순한 ‘소비자’로 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BIFF는 관객에게 직접 마이크를 건네고 무대의 조명을 비추며, 축제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인공’ 의 자리를 내어줍니다.
매진 신화, ‘리퀘스트시네마’의 성공 방정식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리퀘스트시네마’ 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이름 그대로 관객이 보고 싶은 추억의 영화와 그 영화와 함께 만나고 싶은 게스트(감독, 배우 등)를 직접 제안하고 투표로 선정하는 방식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관객의 염원이 담긴 상영작들은 예매 시작과 동시에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신화를 썼습니다. 이는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인 프로그램 기획에서 벗어나, 관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요구를 축제의 중심에 놓았을 때 얼마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명확히 증명했습니다. 관객은 자신이 직접 선택한 영화와 게스트를 보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고, 그 경험에 무한한 애정을 쏟게 됩니다.
최고의 마케터는 바로 ‘관객’, 자발적 바이럴의 힘
앞서 소개한 ‘동네상영관’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영화를 본 관객, ‘리퀘스트시네마’를 통해 평생 잊지 못할 ‘인생 영화’를 다시 만난 관객. 이들의 특별한 경험은 결코 혼자만의 추억으로 남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SNS에 사진과 후기를 올리며 경험을 공유하고, 친구들에게 BIFF에서만 할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을 자랑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어떤 광고보다 강력한 ‘자발적 바이럴 마케팅’ 이 시작됩니다. 수십억 원의 광고비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진정성 있는 후기는 잠재적 관람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내년 부산국제영화제는 꼭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듭니다.
결론: 도시와 함께 성장하는 축제의 미래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연결’과 ‘확장’ 입니다. 영화관의 경계를 넘어 도시 전체를 무대로 삼고, 영화와 관광을 연결했습니다. 축제와 지역 상권을 연결해 상생의 모델을 만들었으며, 주최자와 관객의 경계를 허물어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축제를 구현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진정으로 성공적인 축제란, 단기간의 화려한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일상에 스며들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의 가치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이 축제가 앞으로 또 어떤 방식으로 부산이라는 도시와 함께 성장해 나갈지, 그 다음 장면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