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정책, 물가는 잡아도 성장은 죽인다

“점심값 1만 원은 기본”,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왜 이리 오르는지…”
지난 몇 년간 우리 지갑을 괴롭혔던 무서운 물가 상승, 기억하시나요? 급기야 정부와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긴축정책’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 효과 덕분인지 미친 듯이 치솟던 물가는 어느 정도 안정세를 찾아가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또 다른 걱정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경기가 너무 안 좋다”, “대출 이자 때문에 죽겠다”, “회사가 투자를 줄인다더라…” 물가를 잡기 위해 투입한 특효약이 이제는 우리 경제의 활력을 앗아가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오늘은 우리 삶과 너무나도 밀접한 긴축정책이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물가를 잡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왜 경제 성장은 발목을 잡히게 되는지, 그 ‘두 얼굴’을 쉽고 깊이 있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긴축정책, 도대체 정체가 뭐길래?

긴축정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시중에 풀린 돈의 양(유동성)을 줄여 과열된 경기를 식히는 것’입니다. 마치 너무 뜨겁게 달아오른 엔진에 찬물을 부어 식히는 것과 같죠.

경제가 너무 빠르게 성장하면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면서 물가가 오릅니다. 즉,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팔 물건은 부족하니 가격이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이때 중앙은행(한국의 경우 한국은행)은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을 줄여 사람들의 씀씀이를 줄이고, 기업의 투자를 늦추도록 유도합니다.

이때 사용하는 가장 대표적이고 강력한 무기가 바로 ‘기준금리 인상’입니다.

기준금리란?
중앙은행이 시중은행과 돈을 거래할 때 적용하는 금리로, 모든 금리의 기준점이 됩니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은행의 예금·대출 금리도 연달아 오르게 됩니다.

기준금리 인상은 시중의 돈을 은행으로 끌어들이는 ‘진공청소기’ 역할을 합니다. 예금 금리가 높아지니 사람들은 소비 대신 저축을 선호하게 되고, 대출 금리가 높아지니 기업과 개인 모두 돈을 빌리기가 부담스러워집니다. 자연스럽게 시중의 돈이 줄어들고, 과열되었던 소비와 투자 심리가 진정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약해지는 원리입니다.

금리 인상의 나비효과: 기업과 가계는 왜 지갑을 닫을까?

그렇다면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작은 날갯짓이 어떻게 경제 성장 둔화라는 태풍을 몰고 오는 걸까요? 그 핵심은 기업의 투자가계의 소비라는 경제의 두 축이 동시에 위축되는 데 있습니다.

1. 기업: “이자 무서워 투자 못 하겠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공장을 짓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더 많은 직원을 뽑아야 합니다. 이러한 활동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며, 대부분 은행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합니다.

하지만 금리가 오르면 상황은 180도 달라집니다.

  • 이자 부담 증가: 똑같은 돈을 빌려도 매달, 매년 내야 할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이는 기업의 순이익 감소로 이어집니다.
  • 신규 투자 위축: 높은 이자를 감당하면서까지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기가 망설여집니다. 미래의 수익보다 당장의 이자 비용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계획했던 공장 증설이나 R&D 투자를 보류하거나 취소하게 됩니다.
  • 고용 시장 냉각: 기업이 투자를 줄이면 자연스럽게 신규 채용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심한 경우, 기존 인력을 구조조정하여 허리띠를 졸라매기도 합니다.

결국, 금리 인상은 기업의 성장 동력인 ‘투자’의 엔진을 멈춰 세우고, 이는 일자리 감소와 생산성 저하로 이어져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립니다.

2. 가계: “대출 이자 갚다 보니 쓸 돈이 없네…”

금리 인상의 칼날은 우리 같은 평범한 가계에 더욱 매섭게 파고듭니다. 특히 ‘영끌’로 집을 사거나 주식에 투자했던 사람들에게는 직격탄이 됩니다.

  • 가처분소득 감소: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 변동금리 대출의 이자가 급격히 오릅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매달 갚아야 할 이자만 늘어나니,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가처분소득)이 줄어들게 됩니다.
  • 소비 심리 위축: “일단 아끼고 보자”는 심리가 팽배해집니다. 외식 횟수를 줄이고, 새로운 가전제품 구매를 미루고, 여행 계획을 취소하는 등 필수적이지 않은 소비부터 줄여나갑니다.
  • 자산 가치 하락 우려: 금리가 오르면 안전자산인 예금의 매력이 커지는 반면,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매력은 떨어집니다. 이는 자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키워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이처럼 가계가 지갑을 닫기 시작하면, 물건을 파는 자영업자부터 대기업까지 모든 경제 주체가 타격을 받게 됩니다. 소비 감소는 기업의 매출 감소로, 이는 다시 투자 및 고용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딜레마에 빠진 중앙은행: 물가 vs 성장, 선택의 기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앙은행은 깊은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계속 올리자니 경제가 완전히 고꾸라질 위험(경착륙, Hard-landing)이 있고, 성장을 살리기 위해 섣불리 금리를 내리자니 겨우 잡아놓은 물가가 다시 들썩일(인플레이션 재점화)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은행 총재의 모든 발언, 모든 회의 결과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것입니다. 이들은 수많은 경제 지표를 분석하며, 물가 안정과 경제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구분 연착륙 (Soft-landing) 경착륙 (Hard-landing)
정의 경기를 심각하게 침체시키지 않으면서 물가 상승률을 서서히 낮추는 것 급격한 긴축정책으로 물가는 잡지만, 실업률이 급증하고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는 것
결과 물가 안정과 함께 완만한 성장세 유지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 실물 경제에 큰 충격을 주며, 심각한 경기 침체(Recession)로 이어질 수 있음
비유 활주로에 부드럽게 착륙하는 비행기 활주로에 강하게 부딪히며 착륙하는 비행기

현재 미국 연준(Fed)이나 한국은행 모두 이 ‘연착륙’을 목표로 신중한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많아 그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아 보입니다.

맺음말: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과정

긴축정책은 분명 우리 경제에 고통을 안겨줍니다. 당장 늘어난 대출 이자에 한숨이 나오고, 꽁꽁 얼어붙은 경기에 미래가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통제 불능의 인플레이션이 경제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필요악’과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물가를 잡는 과정에서 성장이 둔화되는 것은 마치 독감을 치료하기 위해 쓴 약을 먹고 잠시 기운이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치료’의 과정이 경제의 기초 체력을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도록 정교하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이제 뉴스에서 ‘금리 동결’, ‘소비자물가지수(CPI)’ 같은 단어가 들려올 때, 그 이면에 숨겨진 물가와 성장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떠올려보세요. 거시 경제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재정적 판단을 내리는 데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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