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어렵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지갑은 얇아지고, 기업들은 투자를 망설입니다. 이럴 때 정부가 꺼내 드는 카드 중 하나가 바로 ‘확장재정’입니다. 마치 가뭄에 단비를 뿌리듯, 정부가 시장에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의도죠.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우리 모두가 받았던 ‘재난지원금’이 바로 대표적인 확장재정 정책의 예입니다.
하지만 이 카드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한쪽 면에는 ‘경기 부양’이라는 희망이 새겨져 있지만, 다른 쪽 면에는 ‘국가부채 증가’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과연 확장재정은 위기에 빠진 경제를 구할 마법의 카드일까요, 아니면 미래 세대에게 빚더미를 떠넘기는 위험한 도박일까요? 오늘 이 뜨거운 논쟁의 중심, 확장재정의 두 얼굴을 속 시원히 파헤쳐 보겠습니다.
1. 확장재정의 마법, ‘승수효과’는 어떻게 경기를 살릴까?
확장재정 정책이 경기를 살린다고 주장하는 쪽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라는 경제학 이론입니다. 어렵게 들리지만, 원리는 간단합니다. 정부가 쓴 돈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경제 전체를 돌고 돌며 원래 투자된 금액보다 몇 배나 더 큰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쉽게 풀어볼까요?
- 정부의 투자 (첫 번째 물결): 정부가 1,000억 원을 투입해 낙후된 지역에 다리를 건설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 소득의 증가 (두 번째 물결): 건설에 참여한 기업과 노동자들은 1,000억 원의 소득을 얻게 됩니다.
- 소비의 확산 (세 번째 물결): 소득이 생긴 노동자들은 그 돈으로 식당에서 밥을 사 먹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자녀의 학원비를 냅니다.
- 연쇄 효과 (네 번째, 다섯 번째 물결…): 노동자들에게 돈을 번 식당 주인, 마트 사장님, 학원 원장님 역시 소득이 늘고, 이들도 또 다른 곳에 돈을 씁니다.
이처럼 정부가 처음 투입한 1,000억 원은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연쇄적인 소비와 소득 증가를 일으킵니다. 그 결과, 국가 전체의 소득(국민소득)은 1,000억 원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승수효과의 핵심입니다.
특히, 저소득층에게 직접 돈을 지원하는 방식(재난지원금 등)은 승수효과가 더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소득의 대부분을 바로 생필품 구매 등 소비에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고소득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면 소비보다는 저축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 승수효과는 상대적으로 작아집니다.
이처럼 확장재정은 침체된 시장에 인공호흡을 하듯 돈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소비와 투자의 불씨를 되살려 경기를 회복시키는 강력한 ‘엔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습니다.
2. 달콤한 유혹의 대가, ‘국가부채’라는 그림자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효과가 있는데 왜 우리는 확장재정을 망설이는 걸까요? 문제는 바로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점입니다. 정부는 세금을 더 걷거나, 아니면 빚을 내서(주로 ‘국채’를 발행해서) 재원을 마련합니다.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세금을 더 걷기는 어려우니, 대부분 국채 발행, 즉 나랏빚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여러 가지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첫째, 민간 투자를 몰아내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
정부가 돈을 빌리기 위해 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하면, 시중의 자금이 모두 정부로 쏠리게 됩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망할 위험이 없는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되면 한정된 자금을 두고 정부와 경쟁해야 하는 일반 기업들은 더 높은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야 합니다.
결국, 이자 부담이 커진 기업들은 신규 투자나 고용을 줄이게 됩니다. 정부가 경기를 살리려고 돈을 풀었는데, 오히려 민간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를 ‘구축(驅逐)효과’, 즉 ‘몰아낸다’는 의미의 경제 용어로 설명합니다.
둘째,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인플레이션’
시장에 상품의 양은 그대로인데 돈만 갑자기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물건값이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빚을 갚기 위해 중앙은행을 통해 돈을 찍어내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면, 걷잡을 수 없는 물가 폭등으로 서민들의 삶은 더욱 고통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셋째, 미래세대의 어깨를 짓누르는 ‘빚의 대물림’
지금 우리가 지는 나랏빚은 언젠가 누군가는 갚아야 합니다. 그 책임은 고스란히 우리의 자녀, 즉 미래세대에게 전가됩니다. 미래세대는 태어나자마자 막대한 빚을 떠안고, 우리가 누린 경기 부양의 대가를 세금으로 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는 세대 간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연도 | 국가채무 (조 원) |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 |
---|---|---|
2019 | 723.2 | 37.7% |
2020 | 846.6 | 43.6% |
2021 | 970.7 | 47.0% |
2022 | 1,067.4 | 49.4% |
2023 | 1,126.7 | 50.4% |
자료: 기획재정부
위 표에서 보듯,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며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매우 가파르게 증가했습니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넘어선 것은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음을 의미합니다.
3. 거대한 재정 실험, 코로나19가 남긴 교훈
확장재정의 명과 암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바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입니다. 전 세계적인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경제가 멈춰서자, 각국 정부는 전례 없는 규모의 돈을 풀었습니다.
긍정적 효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은 당시의 재난지원금과 같은 확장재정 정책이 없었다면 경제가 훨씬 더 깊은 수렁에 빠졌을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특히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의 소득을 보전하고, 급격한 소비 절벽을 막아 경제의 완전한 붕괴를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급한 불’을 끄는 데는 성공한 셈입니다.
부정적 유산: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앞서 본 것처럼 국가부채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풀린 유동성은 자산 시장의 거품을 키우고, 이후 고물가 시대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이제 우리는 ‘빚잔치’ 이후, 어떻게 하면 재정 건전성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라는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결국 코로나19는 확장재정이 위기 상황에서 필수적인 ‘응급처치’가 될 수 있지만, 결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 거대한 실험이었습니다.
4. 정답은 없다, ‘타이밍’과 ‘방식’의 예술
그렇다면 우리는 확장재정이라는 카드를 찢어버려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쓸 것인가, 말 것인가’의 이분법적 선택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 하는 지혜입니다.
- 타이밍: 정말 경제가 심각한 침체 국면에 빠져 자력으로 회복하기 어려울 때, 확장재정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설픈 경기 둔화 시기에 남용하면 부작용만 키울 수 있습니다.
- 방식: 단순히 돈을 뿌리는 것보다, 국가의 미래 성장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친환경 기술 개발(R&D), 4차 산업혁명 인프라 구축, 청년 교육 투자 등은 당장의 경기 부양뿐만 아니라 미래의 먹거리를 만드는 현명한 지출이 될 수 있습니다.
- 대상: 같은 돈이라도 승수효과가 큰 저소득층이나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재정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확장재정은 강력한 효과만큼이나 큰 책임을 요구하는 정책입니다. 단기적인 인기를 위해 미래의 재정을 함부로 끌어다 쓰는 포퓰리즘은 경계해야 하며, 동시에 재정 건전성만 외치다 경기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됩니다.
결론적으로, 확장재정은 경기 침체라는 급성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강력한 항생제’와 같습니다. 꼭 필요할 때 정확한 용량과 용법을 지켜 사용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지만, 오남용하면 내성만 키우고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결국 이 양날의 검을 다루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지혜와 합의에 달려있습니다. 정부의 재정 운용을 꾸준히 감시하고, 단기적 이익과 장기적 안정을 모두 고려하는 건강한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우리의 오늘과 내일이 모두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