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화냐 긴축이냐, 통화정책 갈림길에 선 한국

물가냐 성장이냐, 끝나지 않는 딜레마: 한국은행 통화정책, 어디로 향할까?

“대체 금리는 언제 내리는 걸까?”

최근 많은 분이 입버릇처럼 하는 질문일 겁니다. 높은 대출 이자에 허덕이는 자영업자부터,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져 가는 청년, 장바구니 물가에 한숨 쉬는 주부까지. 우리 모두는 간절히 금리 인하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벌써 11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주요국들이 금리 인하 ‘피벗(정책 전환)’을 논의하는 상황에서, 왜 유독 한국은행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걸까요? 그 이면에는 ‘물가 안정’과 ‘경기 부양’이라는, 좀처럼 양립하기 힘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한국은행의 깊은 고민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경제의 명운을 쥔 한국은행이 왜 이토록 어려운 갈림길에 서 있는지, 금리를 내리지도, 올리지도 못하는 딜레마의 속사정을 알기 쉽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1.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는 3가지 족쇄: 긴축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

모두가 금리 인하를 원하지만, 한국은행이 선뜻 ‘인하’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섣부른 금리 인하는 자칫 더 큰 경제 위기의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① 여전히 높은 목표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물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물가’입니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 후반까지 내려오며 안정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여전히 한국은행의 목표치인 2%를 웃돌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매일 체감하는 과일, 채소 등 신선식품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고, 국제유가 변동성, 공공요금 인상 가능성 등 물가를 다시 자극할 뇌관은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만약 여기서 섣불리 금리를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시중에 돈이 더 많이 풀리면서 잠잠해지던 물가 상승세에 다시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습니다. 어렵게 잡아가던 물가가 다시 3~4%대로 치솟는다면, 금리 인하로 얻는 이익보다 더 큰 고통을 우리 경제 전체가 겪게 될 수 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가 목표 수준(2%)으로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② 1,886조 원, 대한민국 경제의 시한폭탄 ‘가계부채’

두 번째 이유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입니다. 2023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총액은 무려 1,886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100%를 넘는 수준으로,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가계부채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기는 했지만, 만약 금리를 인하한다면 사람들은 다시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을 다시 불러일으켜 가계부채 규모를 더욱 키우고, 부동산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금융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가계부채라는 거대한 시한폭탄을 외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③ 사상 최대로 벌어진 한미 금리 차와 환율 불안

세 번째는 ‘미국과의 금리 격차’입니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3.50%인 반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5.25~5.50%입니다. 금리 상단 기준으로 무려 2%p 차이가 나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큰 격차입니다.

금리가 더 높은 곳으로 돈이 흘러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만약 한국이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면, 이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됩니다. 이는 국내에 투자되었던 외국인 자금이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자본 유출’을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 달러가 빠져나가면 원화 가치는 떨어지고(원/달러 환율 상승), 이는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국내 물가를 다시 자극하는 악순환을 낳게 됩니다. ‘킹달러’ 현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환율 안정을 위해서라도 섣부른 금리 인하는 매우 위험한 선택지입니다.

2. “더는 못 버틴다!” 금리 인하를 외치는 간절한 목소리

하지만 긴축 기조를 무작정 유지하기에도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고금리가 장기화되면서 경제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① 얼어붙은 소비 심리, 살아나지 않는 내수 경제

고금리는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가계의 소비 여력을 감소시킵니다. 당장 매달 내야 하는 대출 이자가 늘어나니 지갑을 닫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는 내수 부진으로 직결됩니다. 실제로 각종 경제 지표는 수출 회복세와는 달리 소비와 투자를 중심으로 한 내수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장을 이끌어야 할 내수 엔진이 차갑게 식어가는 상황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입니다.

② 한계에 내몰린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이자 부담

고금리의 직격탄을 가장 아프게 맞는 이들은 바로 자영업자와 대출자들입니다. 팬데믹 시기를 버티기 위해 대출을 받았던 많은 자영업자는 급등한 이자 부담과 내수 부진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며 폐업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집을 산 가계 역시 살인적인 이자 부담에 가처분소득이 줄어 생활고를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약계층의 고통을 완화하고 금융 시스템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금리 인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3. 한국은행의 선택과 앞으로의 전망

이처럼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 가계부채 관리, 환율 방어라는 ‘긴축의 명분’과 내수 활성화, 서민 부담 완화라는 ‘완화의 명분’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창용 총재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을 예단하기 어렵다”면서도 “물가 경로가 예상대로 간다면 금리 인하를 고려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습니다. 이는 물가 안정에 대한 확실한 데이터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시장의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국은행의 첫 금리 인하 시점을 올해 3분기 말 또는 4분기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 국내 물가 및 성장률 흐름, 환율 변동성 등 수많은 변수에 따라 얼마든지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구분 금리 동결/긴축 주장 근거 금리 인하/완화 주장 근거
핵심 목표 물가 안정 및 금융 안정 경기 부양 및 민생 안정
주요 요인 – 2% 목표치를 상회하는 물가
– 1,886조 원 규모의 가계부채
– 큰 폭의 한미 금리 격차
– 내수 부진 및 소비 침체
– 자영업자·대출자 이자 부담 가중
기대 효과 인플레이션 억제, 부채 증가 억제 투자 및 소비 활성화, 이자 부담 경감
우려 사항 경기 둔화 심화, 취약계층 고통 가중 물가 재상승, 자산 버블 및 가계부채 자극

결론: 신중한 줄타기, 데이터에 달린 미래

결론적으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갯속 형국입니다. 섣불리 금리를 내리자니 물가와 가계부채, 환율이 걱정이고, 계속 동결하자니 침체된 경기와 서민들의 고통이 눈에 밟히는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결국 한국은행은 앞으로 발표될 소비자물가지수, 경제성장률, 미국 연준의 결정 등 경제 데이터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신중하게 다음 행보를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역시 섣부른 기대를 갖기보다는, 한국 경제를 둘러싼 여러 변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차분히 지켜보며 각자의 재무 상황을 점검하고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금리라는 칼자루를 쥔 한국은행의 결정은 우리 모두의 경제 생활과 직결됩니다. 과연 한국은행이 물가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절묘한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를 함께 주목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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